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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기	2008-02-10 02: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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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충남 아산의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전교생이 300명이 조금 넘는 정말 작은  학교였습니다. 대개 한 학년이 한 반 정도 편성되었고 저희 학년은 드물게 두 반이 편성되었습니다. 두 반이라야 전체 합해 80명이 전부였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 동창들은 졸업한지 30년이 넘었음에도 거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편입니다. 가끔 이름과 얼굴이 가물거리는 친구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원용일이라는 친구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이름과 얼굴은 기억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없고 제 기억 속에는 그 존재가 그리 두드러지는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30여년 만에 초등학교 모임 가운데 만났습니다. 여전히 외모나 언변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그 친구에게서 뭔가 끌리고 빛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지난 주간에 생각지 않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용일이는 집이 아주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좋기만 하시고 경제 능력은 거의 없으셔서, 어머니가 멀리 온양 읍내까지 새벽에 나가 공장근무를 하셔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일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고교진학을 못하고 서울의 인쇄소 공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원래 내성적이라 말도 없는데다 조용해서 외모만 보는 사람들이 용일이를 많이 무시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용일이는 최선을 다해 배움을 가졌습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고, 또 시간을 내서 세계참피온을 꿈꾸며 권투 체육관에 나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루 2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쇄소에서 일을 배움에도 꾀부리지 않고 인쇄잉크를 배합하는 것을 맨손으로 저어 감을 익히며 그렇게 하는 것이 남들에게 미련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우직하게 배웠습니다. 그 와중에 엄한 선배를 만나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그 선배는 조금만 방심해도 인쇄기계에 손이 들어가 장애를 입는 것을 막기위해서 엄하게 용일이를 다뤘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야구방망이로 맞았는데 꼭 맞기전에 몇 대 맞겠냐고 물었답니다. 옆의 친구는 한 두 대 맞는다고 할 때 용일이는 우직하게 늘 다섯 대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섯 대 맞은 용일이는 성공한 중소기업인이 되었고, 한 대 맞은 친구는 아직도 형편이 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덕에 용일이는 인쇄계통에서는 알아주는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잉크 배합기술은 독보적이 되었으며 기계를 다루는 데에도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일이 말로는 지금은 기계가 자동배합을 해서 그렇지 아직도 사람이 잉크배합을 사람이 한다면 인간문화재급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착하기만 한 용일이가 지금의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용일이의 이 기술을 높이 산 어느 분께서 동업을 제안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일이는 그분이 자본을 대고 자신은 기술을 제공해서 동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막상 계약을 하고나니 그분이 발을 빼더랍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워낙 기술이 좋고 신용이 있어서 용일이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지금의 사업체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공장 기계만 15억원 정도 하고 곧 그 정도의 기계를 더 들여올 계획이라니 사업의 규모가 짐작이 됩니다.

  제가 더 관심있게 본 것은 용일이의 삶과 마음입니다. 용일이는 자신이 어렵게 살아왔고 또 잘난 사람들에 의해 무시당해왔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그렇게 보듬고 이해하려 애써왔습니다. 몇 몇 친구들이 동창 모임에도 자신없어 나오지 않으려고 하면 회비를 대주며, 억지로 참여하게 이끌었습니다. 동창들의 어려움에는 발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려했습니다. 용일이는 지금도 허름한 작업복에 고교생들의 가방 같은 것을 하나 메고 다닙니다. 용일이가 양복을 입을 때는 직원들 집에 갈 때라고 합니다. 용일이의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 등을 들으며 참으로 고개가 숙여지고 어떤 대목에서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친구가 내 초등학교 친구였지만, 저는 지금까지 이런 친구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늘 친구를 그리워하고, 또 내게 배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았지만 그 친구는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친구를 알아볼 눈이 제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면 놓치고 말 뿐입니다. 용일이를 통해 저는 이토록 마음이 깊고 소중한 친구를 가까이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지난 날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친구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기쁨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감사한 마음입니다.